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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월 25일 (목) / 제 30 회 박정권은 제 10대 총선 결과 신민당이 승리하자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갈 것같은 불안에 휩싸인다. 김영삼이 기자회견에서 당권에 도전, 유신 철폐를 주장하겠다고 밝히고 유신의 긴급조치로 묶여져 있던 노동계, 종교, 사회, 학원 등에서는 억눌렸던 불만을 터뜨린다. 가발업체인 Y.H무역은 나의 어린 여자 종업원들의 근면한 자세로 급성장하지만 기업주는 자신의 축제에만 신경을 쓰고 급기야는 미국으로 돈을 빼돌려 기업운영이 어렵게 돼 공장문을 닫는다고 통보한다. 여공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억울한 처지를 알리기 위해 신민당 당사로 찾아가 자신들의 정당한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지만 박정권의 공권력에 무참히 짓밟힌다.
제4공화국 30 회 1996-01-25MORE
1996년 1월 24일 (수) / 제 29 회 ''75년 5월 21일, 박정희는 신민당 총재 Y.S와 영수회담을 갖고 유신헌법을 개정하라는 Y.S의 건의를 받아들여 헌법개정을 밀약하지만 신민당 전당대회는 여권의 정치 공작에 의한 폭력배들의 난입으로 유혈사태를 빚고 김영삼은 총재직을 내놓게된다. 온건노선을 걷고 있던 이철승과의 밀월시대를 걸어가던 박정권은 선거를 앞두고 Y.S와 D.J,이철승을 각각 대립시켜 야권을 분열시키려 하지만 유신독재에 염증을 느낀 국민은 박정권에 등을 돌린다.
제4공화국 29 회 1996-01-24MORE
1996년 1월 18일 (목) / 제 28 회 박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차지철은 경호실장 권력 이상을 발휘하면서 제4공화국 후반의 권력자로 등장한다. 한편 김대중은 긴급조치 위반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건강악화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지자 기자들의 문전성시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차지철은 국민여론을 조성하는 김대중에 대해 강경조치로 맞서지만 결국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
제4공화국 28 회 1996-01-18MORE
1996년 1월 17일 (수) / 제 27 회 육영수여사 사망 후 박대통령은 경호실장에 차지철을 임명하고 경호실의 권한 모든 국가권력기관 위에 군림하게 된다. 차지철은 모든 면에서 박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얻게 되고 경호실의 업무 또한 한층 강화 되면서 차지철은 권력을 남용한다.
제4공화국 27 회 1996-01-17MORE
1996년 1월 11일 (목) / 제 26 회 한강변에서 피살당한 정인숙의 차에서는 고위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27명의 명단이 적혀 있는 수첩이 발견된다. 정씨의 살해 동기는 정씨가 재산이 많고 돈 잘 쓰는 여동생에게 고용되다시피한 운전사로서의 열등감과 동생의 방랑생활에 분노를 느껴 살해한 것으로 밝힌다. 이 스캔들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박종규 경호실장까지 소문의 진상을 캐기 위해 나서고 국회로까지 비화된다.
제4공화국 26 회 1996-01-11MORE
1996년 1월 10일 (수) / 제 25 회 박정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정치 흥정의 산실인 밤의 요정이었다. 요정정치에는 반드시 젊은 여인이 끼어있게 마련이었고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정인숙이었다. 정인숙은 재계는 물론이고 정계의 여러 고위관리층들과도 관계를 가진다. 자신의 위세를 당당히 떠벌리고 다니며 결국엔 임신을 하게 된다.
제4공화국 25 회 1996-01-10MORE
1996년 1월 4일 (목) / 제 24 회 유임에서 제외된 김형욱은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시작하고 뉴욕 타임즈와의 회견에서 미국을 향한 한국의 로비 활동을 폭로하겠다고 나선다. 유신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회고록 발간 준비를 서두르고 이러한 김형욱을 향한 정부의 접근이 여러각도에서 진행되던중 김형욱을 파리로 유인하는데 성공한다.
제4공화국 24 회 1996-01-04MORE
1996년 1월 3일 (수) / 제 23 회 60년대 후반 박정희의 이른바 공포정치로 향하는 징후는 언론 탄압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었는데 그 대역을 김형욱이 맡았다. 김형욱은 여러 의원들에 대한 탄압도 멈추지 않았는데 이러한 월권행위를 참지 못한 의원들은 김형욱을 그만두게 하지 않는다면 삼선 개헌안의 지지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박대통령은 이러한 조건을 수락하고 김형욱은 출국한다.
제4공화국 23 회 1996-01-03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