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1917년 11월 14일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왜소한 신체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끼며 생활한다.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한 청년 박정희(홍경인)는 성적은 우수하지 않았으나 검도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18세가 되던 1935년 첫번째 부인 김호남(오연수)과 결혼한다. 박정희는 1936년 2월 26일 발생한 청년장교 주도의 일본쿠데타에 대한 소식을 듣고 군인이 되기로 결심,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가 1941년 만주 군관학교에 입학한다. 만주 군관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박정희(이진수)는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편입, 만주에서 일본군으로 싸우다가 해방을 맞이한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조국은 해방되고 이듬해 박정희는 고향에 돌아온다. 고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생활하던 박정희는 어느 날 무언가를 결심한 듯 세면도구만 챙겨서 상경, 조선 경비사관학교에 2기생으로 입학한다. 하지만 일주일 뒤인 1946년 10월 1일 대구폭동사건이 일어나 가장 존경하던 형인 박상희가 경찰의 총에 숨을 거두고 박정희는 실의에 빠진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박정희는 육군 8연대에 배속되고 이무렵 남로당의 이재복과 만나 남로당원이 된다. 1948년 10월 20일 여순반란사건이 발생하고 남로당원인 박정희는 사건이 끝난 후 숙군정책으로 조사를 받고 군복을 벗게된다. 여기에 동거녀 이현란(김애경)과도 헤어지게 되면서 실의에 빠져있던 박정희는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육군 소령으로 복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