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대한제국의 대신들이 덕수궁 수옥헌으로 강제 연행된 다. 고종황제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국에 매수된 매국 5 적의 찬성으로 나라의 주권이 일본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하야시 공사는 외무부에 보관되어 있던 옥쇄를 강탈하여 조약문서에 날인 한다. 마침내, 11월 18일 오전 2시. 조약체결이 발표된다. 소식을 접한 고종황제는 망국의 통한을 가누지 못한다. 당대의 명문으로 평가되는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이 발표되면서 울분에 찬 백 성들의 저항이 계속된다.
최원식의 혼인날, 면암 최익현은 손부 안동 김씨(13세)의 성숙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제 떠나도 되겠다는 안도감에 젖는다. 면암 최익현은 73세의 노구를 이끌고 무너진 담장을 넘어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무성서원’에는 600여 명의 유생들이 모여들었다. 모두가 면암 최 익현의 기병소(起兵疏)를 읽고 몰려든 젊은이들이었다. 마침내 최 익현은 고종황제에게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찌르겠다는 상소를 올리고, 드디어 1906년 5월 8일 거병하였다. 이토오 히로부미는 조 선군 남원진위대로 하여금 최익현의 의병을 공격하게 한다. 최익 현은 의병들에게 무기를 버릴 것을 명한다. 같은 동포끼리 피를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휘하를 떠난 제자도 있었지만, 최익현을 비롯한 애제자 13명은 남원진위대에 투항하였 고 곧 서울로 압송된다.
이토오 히로부미는 더 이상의 불상사가 있다면 조선의 불행이 이 어질 것임을 간곡한 어조로 설득한다. 면암 최익현이 구금된 사실 이 알려지면서 일본군 헌병대 주위에는 조선 유림이 운집하여 인 산인해를 이루고, 마침내 면암 최익현 일행을 태운 배가 부산포를 떠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