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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 회] 1990-04-29

혁명인가, 쿠데타인가 (마지막회 1편)

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 30분 쿠데타 세력인 해병대 제1여단과 진압군 헌병의 교전
은 30분만에 끝나고 쿠데타 세력은 방송국과 육본 등 주요 시설을 장악한다.

쿠데타 세력은 장면 총리(김무생)의 집무실 겸 숙소인 반도호텔 808호실로 쳐들어가
지만 이미 장면 총리는 몸을 피한 후이다.

중앙방송국을 장악한 쿠데타 세력은 새벽 4시 35분 성명서를 발표하고 자신들의 쿠
데타가 국가를 위한 혁명이라고 말한다.

육본을 장악한 박정희(이진수)는 장도영 육군참모총장(김동현)에게 쿠데타를 지지
해 줄것을 요청하고 장도영은 해군과 공군참모총장, 해병대 사령관과 함께 대책을
논의한다.

박정희는 첫 사업으로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용공분자 검거령을 내려 닥치는대
로 잡아들이고 윤보선 대통령(이순재)을 찾아가 경위를 설명한다.

더불어 총리가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계엄령을 추인해 줄것을 요구한다.

매그루더 장군과 그린 대리대사는 변칙적으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윤보선 대통령을
찾아가 진압군을 출동시킬 것을 촉구하지만 국군내의 유혈사태를 우려한 윤보선 대
통령은 통수권을 거부한다.

박정희는 부하 장교들을 시켜 다시 삼군 참모총장을 협박하고 1961년 5월 16일 오후
4시 30분 장도영은 결국 군사혁명위원회의장 및 계엄사령관을 수락함으로써 혁명을
지지한다.

육군의 막강전력을 휘하에 두고 있는 이한림 제 1군사령관은 박정희를 반란자로 몰
며 진압책을 강구한다.

더불어 미군은 8군사령부에서 작전회의를 열고 다소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는 윤보
선 대통령에게 유혈사태 없이 일을 마무리 하자는 내용의 친서를 각 야전군 지휘관
들에게 보낼것을 부탁한다.

이한림 1군사령과는 여기에 반발하지만 1군사령부내 쿠데타 동조세력에게 축출당하
고 박정희는 가장 껄끄러운 상황을 넘긴다.

한편 갈멜수녀원에 은신중인 장면 총리에게 그의 측근인 경향신문 사장이 찾아온다.

경향신문 사장실에서 대책을 논의하던 장면 총리(김무생)의 측근들은 장면 총리가
서명만 해주면 즉시 군을 움직여 쿠데타군을 진압하겠다는 1군 사령관 이한림 중장
의 서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 한사장을 다그쳐 장면에게 보낸다.

갈멜수녀원에 은신해 있는 장면 총리를 찾아온 한사장은 육군에 군부 쿠데타를 진압
하라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촉구하지만 장면은 거부한다.

1961년 5월 18일 오전 9시 육사생도들은 쿠데타를 지지하는 시가행진을 하고 육사교
장 강영훈 중장은 장도영 육군참모총장(김동현)을 찾아와 이것은 쿠데타의 가타부타
를 떠나서 군 전체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문제라며 말려야 겠다고 한다.

하지만 박정희(이진수)의 부하들이 강영훈 중장에게 총을 겨누며 나가지 못하게 한
다.

같은날 오후 12시 30분경 은신처에서 나온 장면은 국무회의를 소집하여 내각의 해산
을 결정함으로써 1960년 8월 23일 출범 이후 270일만에 장면 내각은 붕괴된다.

이후 정당 및 사회단체가 해산되고 1962년 3월 22일 윤보선 대통령이 하야함으로써
제2공화국은 붕괴된다.

사회가 안정이 되면 정권을 정당하게 넘기고 군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겠다고 약속
한 쿠데타 세력은 그러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기나긴 군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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